지금껏 이사라는 것 지나간 세월에 비해 그다지 많이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최초의 이사는 일곱살 되던 해 겨울, 이삿짐 트럭 앞자리에 앉아 시원찮은 히터에 떨면서
어머니가 까주시던 귤을 먹으며 상경했던 것이고, 종로구에서 초중등 소년기를 보내고, 근처에 대학로가 만들어질 즘
다리를 건너 강남이라는 곳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청담동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생활을 마치고 당시만 해도 인적이 뜸했던, 국교시절 친구들과 한시간 가량 버스타고 놀러가
개구리잡고 멱감던 그곳, 말죽거리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이후 지금까지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이사 때마다 제가 한 것이라곤 어머니가 알려주신 이사집 주소를 받아서 하교 길에 찾아갔던,
보물찾기의 심정으로 길을 묻지 않고 한번에 찾아갔을 때 일종의 희열을 느꼈던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건 저 뿐만이 아니라 어머니를 제외한 온 가족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모든 고생을 어머니 혼자서 하셨던거죠.
이처럼 이사의 노하우라곤 전혀 없는 제가 이번 여름의 끝자락에 처음으로 주체가 되어 제 명의로 계약도 하고 거처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사 준비를 하면서 아버지의 유물들과 창경국민학교 시절 친구들로부터 받았던 크리스마스 카드들과 편지들,
고교때 친구들과 주고 받았던 편지들과 펜펠레터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군 복무시절 큰 위로가 되어주었던 많은
편지들을 이번에 모두 다 정리했습니다.
제겐 나무 서랍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전교 1등이라는 약속을 지켰으니 약속대로 나만의 책상을 사달라고 철부지처럼 울면서 졸라서 받은 책상에
딸려 온 것인데, 그 책상은 성인이 된 후엔 높이가 맞지 않아 오래전 폐기했고, 나무 서랍장에는 학창시절 공부했던 자취들
각종 노트, 시험지, 상장들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 국민학교 시절의 일부 자료들과 수양록 등 일지들만 챙겨서
가벼운 상자에 옮기고 추억의 서랍장도 기억들과 함께 떠나보냈습니다.
그 서랍장 속에서 세월이 느껴지는 팜플렛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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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팜플렛을 보니 제게 내재되어 있던 사진에 대한 열정이 다시 깨어나더군요.
회상해보면 서클 활동이 활발했던 당시의 영동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니콘FM 수동카메라와 50mm F1.4 렌즈를 활용하고자 사진반에 가입을 했습니다.
기억엔 사진반 가입시 T/O가 있어서 사진기초이론 등 가입 시험도 보고 면접도 봤던 것 같습니다.
영동백화점 부근 중국집에서 앞서 졸업한 선배분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얼떨결에 제가 사진반장으로 뽑혔고
전 그 때부터 거의 미친 놈처럼 사진 활동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까지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3년마다 한번씩 5월에 ‘鶴祭’라는
대규모 축제를 했는데 당시 사진반은 교내 넝쿨이 잘 자라 언제나 우리들에게 휴식공간이 되어 주었던
'前進동산' 이라는 곳에서 그동안 준비해 온 작품들을 전시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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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러길 희망합니다만 당시의 영동고등학교는 재정적인 여건이 좋아서 해청관 미술실옆에 별도의 암실이 딸린
사진반실이 있었고 그곳에서 학교의 지원을 받아 사진 현상과 인화에 관련된 재료들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암실에는 비록 흑백이긴 하지만 고풍스런 수동 인화기도 있었고 그 곳에서 매주 특별활동시간에 모여
시큼하면서 다소 역겨운 약품 냄새를 맡으면서 현상과 인화작업을 했습니다.
모두 앞기수 선배들로부터 직접 전수받은 기술로 홍등 아래 핀을 맞추고 서울극장 주변 사진재료상으로부터 구입한
신문지만한 크기의 인화지에 순간을 담아냈던 그 황홀한 기억들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현상액에 담긴 하얀 인화지에 투명인간이 나타나듯 순식간에 검게 떠오르는 찰라의 순간들,
그 종이를 다시 정착액에 넣고 물로 씻은 후 찰라를 영원으로 남게했던 기억들,
수도물에 잘 행궈서 집게에 널어 말린 후 원하는 구도로 트리밍을 해서 판낼로 제작, 전시회에서 뽐내었던 추억들...
전시회 준비 과정에서 기억나는 것은 어느 화창한 봄날 주말, 다른 친구들 도서관에 나와서 공부할 때 반원들과 함께
어린이 대공원 등 야외로 출사를 나가 우리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담고서 서로가 찍은 것에 대해 의견도 나누고,
혹시나 타학교 사진반에서 와서 이것저것 물어볼까 사진 이론으로 무장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진 책들이 번역책들이 주여서 이해하기 쉽지 않았던 것 같은데 피사계심도가 어쩌니 퍼스펙트효과니
하이키니 로우키니 등등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인데 당시 학생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용어들이 마치 대학생들이
타임지 청바지 뒷주머니에 말아서 넣고 다니는 것 처럼 나름 과시할 수 있었던 무기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래도 그 기법들과 용어를 읽히던 것이 수학의 정석과 종합영어 보다는 훨씬 더 재미있고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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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시했던 판낼들도 20년이상 보관하고 있었는데 역시 과감하게 정리를 했습니다.
일부 3X5 사이즈로 뽑아두었던 사진들만 앨범에 남겨두고서 말이죠.
당시에 생각해보면 사람을 찍는 것보다 야경이라든지 풍경을 찍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한번 출사시마다 코닥 필름 36판짜리 3통 이상을 준비해 나갔고
필름이 아까운 아날로그 시절이라 모든 것을 한장 한장 정성껏 수동으로 찍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SLR로 사진을 찍게되면 겪게 되는 증세가 있는데
이것은 마치 대학가서 처음 당구를 배울 때 겪게 되는 그런 증세와 매우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당구를 처음 배울 때 교실 칠판이 당구대로 보이고 사물의 모든 것이 쿠션을 칠 수 있는 각으로 보이고,
전봇대 마저 꽃 다마로 보이면서 온통 머리 속에서 각잡고 돌리는 것만 생각하게 될 때가 있는 것 처럼
사진에 빠지게 되면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어느 부분까지 프레임에 넣고, 어떤 구도로 어떤 분할로 화면에 담을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하게 되고
수업 시간에 창밖을 바라보면서 머리속으론 창밖의 나뭇가지와 건물들을 트리밍을 하면서 줌인을 하게 됩니다.
밑에서 바라본다면, 옆에서 바라본다면, 위에서 바라본다면 어떨까,
어떤 느낌으로 어떤 테마를 가지고 담을 것인가에 대해서 늘 궁리하게 되고
길을 걸으면서, 땅과 하늘을 바라보면서 각종 구상을 하게 됩니다.
좀 정도가 심하게 되면 영하 10도쯤은 아랑곳 없이 아령처럼 묵직한 카메라를 목에 걸고
손과 발이 꽁꽁 얼어 글리세린을 바른 손등이 터지는 것을 보면서도 인천의 칼 바닷바람에 맞서며
일몰의 순간을 담게 됩니다.
이후 '이 순간만을 위해 72시간을 기다렸다는' 모 카메라 광고의 카피처럼 기다림과 친해지게 됩니다.
만선의 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걸어서는 안되는 철로를 정처없이 따라 걸으며 언제올지 모를 새벽기차의 기적소리를 기다리게 되고,
한 눈을 감고서 사진을 찍는 것이 위안이 될 정도로 차디찬 한강 바람을 맞서서 흔들리는 한강 다리 난간에 기대어
서울의 야경을 담고, 여름날 한강 둔치에서 모기에 뜯겨가며 서울 타워를 애인 삼아 데이트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추억들이 제 고교 생활에 있어선 너무나 큰 자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만약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수험 공부하는 것은 정말 지금 생각해도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닙니다만,
사진을 찍고 현상하고 인화했던 그 순간만은 또 다시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물론 다크 룸에서 항상 곁에 있어 주었던 바흐와의 재회도 빠뜨릴 수 없지요.
사진에 대한 열정은 대학을 진학하면서 점차 약해지게 되는데 너무 광적으로 빠져지내서 지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더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중요한 기념일이라던가 세레모니가 있는 날이면 제 손엔 어느샌가 카메라가 맡겨져 있었고,
그것은사회 생활하면서도 이어져서 중요행사나 기록을 남겨야 될 순간에 있어서는 저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게 되곤 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내공이 출중한 사람이 많습니다.
업으로 삼고 있는 프로들이나 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도 뛰어난 자기만의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웹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뽐내기도 하고 서로 조언도 하고 기기에 대한 정보 공유도하는 세상이 되었죠.
새천년 들어서 카메라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게 되고, 폰카나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의 디카에서 DSLR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디서나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문가 영역이었던 후보정작업도 전용이나 범용 프로그램으로 누구나 조금만 배우면 PC로 할 수있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필름값이 들지 않아 초당 몇장의 연사도 날리게 되고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그야말로 편리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헬로재즈는 사진 동호회는 아닙니다만 이러한 보편화된 니즈를 반영하고자 누구나 자신이 찍은 사진을 올릴 수 있도록
겔러리 게시판을 열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전 풍경 위주의 사진을 주로 찍어 왔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저도 소위 말하는 '아빠사진사’가 되게 되더군요.
부모라면 그 이쁘고 귀여운 것이 옹알이 밖에 못하지만 똥기저귀 차고 앉아 있는 모습에서 한없이 큰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저의 경우 아직 디카가 보편화되기 전인 시기에는 휴대용 미니 폴라로이드로 찍어 여백에 그날의 주제를 기록하다가,
고작 8MB 메모리의 2백만 화소의 디카를 빌려서 TV수분의 화소로 찍다가 ‘04년이 되어서야 어느 정도 제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30 frame 640x480 동영상을 지원하고 광학 10배줌이 지원되는 올림푸스의 770uz 모델이었습니다. 지금은 처남 줬습니다.)
초기 모델이라 흔들림 방지기능은 없었지만 똑딱이 특유의 깊은 심도는 물론 10배 망원줌이 되어 아이를 찍을 때 상대적으로
얕은 심도를 확보할 수 있어서 어느 정도 해갈은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이사를 가면서 사진반 친구, 후배들과 같이 스폰서를 얻고 홍보를 하러 다녔던 그 팜플렛과 당시 공연 사진들을
발견하고는,그래도 내가 술도 많이 안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는데 이 정도 취미는 나를 위해서 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
때마침 DSLR 최초로 동영상도 지원하는 제품(니콘 D90)이 나와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당시 공연 사진 이야기를 했는데 나름대로 희귀한 사진일 것 같아서 공유합니다.
시기는 ' 87년 당시 학제때 체육관에서 공연하는 것을 제가 찍은 사진인데 필름은 없고 인화해둔 것만 있어서 스캔을 했습니다.
당시 사회를 봤던 분은 지금은 SM의 대주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당대의 MC 이수만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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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로는 지금도 활동하시는 영원한 뽀식이...이용식씨가 웃음을 선사하셨습니다.
이수만씨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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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초대가수...바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들국화'의 콘서트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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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 바닥에도 앉아 있는 저 학우들 보세요. 손으로 쓴 듯한 프래카드가 인상적이지 않습니까?
젊은날 전인권씨의 열창하는 모습 두 장을 더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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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불후의 명곡 '행진'을 부르던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 부르면서 찍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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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0년전 타국에서 세상을 떠나신 허성욱씨의 키보드 연주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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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자 학교였으니 여가수가 있었겠죠? 당시 신인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정소희씨라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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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보면서 조금 아쉬운 것은 이사를 가기 전에 디카 살 때 보탠다고 15만원 받고 옛날의 추억을 담고 있었던 필카와
MF 렌즈를 중고상에 팔았던 것입니다. 그나마 동남아의 사진학과 학생이 자신의 스킬업을 위해서 잘 활용을 하고 있을 것 같아
나름 위안이 되기도 하고, 정작 가지고 있으면 장롱표 카메라로 되었을거야 라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Nikon D90 이야기 하다가 사진소개로 흘렀습니다만, 여러 기종을 고려하다가
Flagship처럼 비싸지도 너무 무겁지도, 작지도 않으면서 나름 그립감이 좋은 것으로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동영상 지원이 가장 큰 영향을 줬습니다만...
D300에 AF 80-200렌즈 끼고 SB-800 스트로보까지 물려서 연이틀 찍었더니 일주일 내내 손목이 욱씬 거리더군요.
마치 안치던 볼링 3게임 하고 나서 다음 날 버스 손잡이 잡을 때 처럼 손목에 힘이 안들어가고,
문 열때 문고리 돌리는 힘조차 주기 힘든 그런 후유증과 비슷한 경험이었습니다.
화장실 버전도 있습니다만...위생상 생략합니다.
요즘 이러다 보니 정작 음악관련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올해 들은 신규 재즈 음반이 몇 장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메인 취미에 소홀히하고 있습니다.
(이사와 관련해서 음악생활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이 이야기는 별도의 글에서 한번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사진의 세계에 빠져 보는 게 어떠세요?
아직 가격에 버블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엔트리급 DSLR은 가격이 많이 내려 하이엔드 디카 살 비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여러분들도 한번 정도는 구입해서 사용해보시기 바랍니다.
휴대성이나 무게측면에서 많이 불편하지만 그 손 맛과 느낌이 다를 겁니다.
물론 나중에 닥쳐올 고가의 렌즈들의 무시무시한 지름신의 영접은 책임을 못 집니다.
이것 정말 심하거든요. 다 써보고 정리하기 전까진 아마 억제하시기 힘들 겁니다.
지금은 겨울이라 색을 잃은, 유채색에서 무채색으로 변해버리는 시기이라 세상을 담기에 적합한 시기는 아닙니다만
아지랑이 피는 봄이 오면 카메라 들고 계절의 변화를 담아보시기 바랍니다.
기억은 잊혀질 지라도 찰라를 간직한 순간의 기록들은 영원할 것입니다.
제 지난 고등학교 때 추억들처럼 말이죠.
와.... JJ님 고등학교 때의 사진들이네요.
청소년의 JJ님이 사진반의 친구들과 함께 진지한 눈빛으로 사진을 현상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위생상 생략된 이야기도 살짝 궁금해지구요. ㅋㅋㅋㅋㅋ
잘 보았습니다!